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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성인어

天声人語 2007年07月08日(日曜日)付

 

   日照(ひで)りが続いた後なら、「喜雨(きう)」「慈雨(じう)」と歓迎される。しかし雨は、やはり疎(うと)まれがちだ。日々のあいさつでも、「あいにくの空模様(そらもよう)」「足元の悪い中」などと、忌(い)むように言い交(か)わされることが多い。

   가뭄이 이어진 뒤라면, 「희우」「자우」라 환영받는다. 그러나 비는, 역시 꺼려지는 경향이 많다. 매일의 인사에서도, 「공교로운 날씨」「걷기 어려운 가운데」등으로, 싫다는 듯이 주고받아지는 경우가 많다.

 

 

 

 だが雨好きもいる。詩人の薄田泣菫(すすきだ・きゅうきん)は、梅雨の雨がしとしと降る日を、「好きな本を読むのすら勿体(もったい)ない程の心の落ち着きを感じます」と随筆に述べている。そんな日は、静かに心の深みに降りていって、独を遊ばせ、独を楽しみたいと言う。

   그러나 비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시인인 스스키다 큐우킨은, 장맛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을, 「좋아하는 책을 읽는 것조차 아까울 정도의 마음의 안정을 느낍니다」라고 수필에 쓰고 있다. 그런 날은, 조용히 마음 깊은 곳으로 물러나서, 고독을 놀게 하고, 고독을 즐기고 싶다고 한다.

 

 

 

 仏文学者の辰野隆(ゆたか)も、降りはじめると、雨を眺めながら、聴きながら、いつも気分が快(こころよ)かった。「雨。雨。雨。……雨滋(しげ)き国は何処かにないであろうか」と記し、自分の前世は田(た)んぼの蛙(かえる)か田螺(たにし)だったらしいと言っている。

   프랑스 문학자인 유타카도, 내리기 시작하면, 비를 바라보며, 들으며, 항상 기분이 상쾌했다. 「비. 비. 비. …… 비 그치지 않는 나라 어디 없을까」 라고 쓰며, 자신의 전생은 논의 개구리이거나 우렁이였을 거라고 말하고 있다.

 

 

 

   静かな感傷を許さない「暴れ雨」が、近ごろは目立って増えている。短時間に滝(たき)のように降り、瞬く間(またたくま)に冠水(かんすい)や浸水をもたらす雨だ。気象庁によれば、1時間に80ミリ以上だと「圧迫感(あっぱくかん)があり、恐怖を感じる」という。とても心の深みで独を遊ばせるどころではない。

   고요한 감상을 허락하지 않는 「폭우」가, 요즘엔 눈에 띄게 늘고 있다. 단기간에 폭포처럼 내려, 순식간에 홍수나 침수를 일으키는 비이다. 기상청에 따르면, 1시간에 80mm이상이라면 「압박감이 생기며, 공포를 느낀다」고 한다. 도저히 마음 깊은 곳에서 고독을 놀게 할 상황이 아니다.

 

 

 

 片や、数日から1カ月ほど、ほぼ雨無しが続く頻度も増えている。つまり「降らないか、降ったら土砂降り(どしゃぶ)」という二極化が進んでいる。渇水(かっすい)を案じて待ち望んだ慈雨が、たちまち災いの雨に変わる。これもやはり、温暖化と無縁ではないらしい。

   한편은, 수일에서 1개월 정도, 거의 비가 내리지 않는 날이 계속되는 빈도도 늘고 있다. 즉 「내리지 않거나, 내리면 억수같이 쏟아진다」라는 양극화가 진행되고 있다. 갈수를 걱정하며 기다리고 기다리던 자우(단비)가, 순식간에 재난의 비로 바뀐다. 이것도 역시, 온난화와 관련이 없지 않다.

 

 

 

 大雨に見舞われた九州でも、短時間に猛烈な雨の降った所が多い。凶暴な雨である。しかし「人為の故なきにしもあらず」なら、これを「天災」と忌むだけでは事足りないのかもしれない。

   폭우가 엄습한 큐슈에서도, 단기간에 맹렬한 비가 내린 곳이 많다. 흉폭한 비다. 그러나「인위적인 원인 없이는 일어나지도 않는다」라면, 이것을 「천재」라며 기피만 하기에는 뭔가 부족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