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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성인어

天声人語 2007年05月27日(日曜日)付

 

   鳥の声の「聞きなし」を知っておられるだろうか。鳴き声に耳を傾けて、似た言葉に置き換えることだ。簡単なものではカラスの「阿呆(あほう)、阿呆」、コノハズクの「仏法僧(ぶっぽうそう)」などがある。

   새 소리에 대한 「키키나시」를 알고 계실는지. 울음소리에 귀를 기울여, 비슷한 말로 바꿔 놓는 것이다. 간단한 것으로는 까마귀의 「바보(아호우), 바보」, 소쩍새의 「불법승(붓뽀-소-)」등이 있다.

 

 

 

 やや難しくなるとフクロウを「ぼろ着て奉公」と聞く。地方によってさまざまだが、ツバメなら「土食って虫食って渋い」、ホオジロは「一筆啓上仕(つかまつ)り候」となる。夏を告(つ)げる渡り鳥のホトトギスは「特許許可局」だ。久しぶりに聞きたくて、先だって群馬の山を歩いた。

   약간 복잡해지면 올빼미를 「누더기 걸치고 더부살이(보로키떼호-코-)」라 받아들인다. 지방에 따라 다양하지만, 제비라면 「흙 먹고 벌레 먹고 떨떠름(쯔치쿳떼무시쿳떼시부이)」,멧새는 「간단히 몇자 적어 올리옵나이다(잇삐츠케이죠-츠카마쯔리소-로-)」가 된다. 여름을 고하는 철새 두견은「특허 허가국(톡쿄쿄카쿄쿠)」이다. 오랜만에 듣고 싶어서, 앞서 군마의 산을 거닐었다

 

 

 

 滴(したた)るような青葉だが、時期が早すぎたのか、美声(びせい)の拝聴(はいちょう)はかなわずに山を下りた。だがじきに飛来して、あたりのウグイスの巣に卵を産み付けるだろう。「托卵(たくらん)」といって、ホトトギスには抱卵(ほうらん)から子育てまで他の鳥にお任せする変わった習性がある。

   싱싱함이 넘치는 듯 한 푸른 잎이었지만, 시기가 너무 일러서인지, 고운 지저귐은 듣지 못하고 산을 내려왔다. 근처에 있는 휘파람새 둥지에 알을 낳을 것이다. 「탁란」이라 하여, 두견에게는 알을 품기부터 새끼 키우기까지 다른 새에게 맡기는 별난 습성이 있다.

 

 

 

 孵化(ふか)したホトトギスは育ての親より大きくなる。巨大なヒナに、小さな親が餌を与える図(ず)は、かなり奇異(きい)だ。自然の摂理(せつり)とはいえ、ずうずうしい習性である。

   부화한 두견은 기르는 부모보다 커진다. 거대한 새끼 새에게, 작은 부모가 먹이를 주는 모양은, 상당히 기이하다. 자연의 섭리라고는 하나, 뻔뻔스러운 습성이다.

 

 

 

 劇作家の宇野信夫はある劇で、子不孝な遊び人を、岡(おか)っ引きが「お前は親にはなったが、親とはなれぬ」と諭(さと)すせりふを書いた。生物学的には親でも、世間的には親として失格。その含みを「に」と「と」の違いに込めた。遊び人は改心する、という筋書(すじが)きだ。

   극작가인 우노 노부오는 어느 극에서, 아이를 돌보지 않는 건달을, 포리의 끄나풀이 「네 놈은 부모가 되었지만, 부모로는 될 수 없다」라고 타이르는 대사를 썼다. 생물학적으로는 부모일지라도, 일반적으로는 부모로서 실격. 그 함축을 「に」와「と」의 차이에 담았다. 건달은 개심한다, 라는 대략적인 내용이다.

 

 

 

 親と子をめぐる辛(つら)い話が多い。熊本市の「赤ちゃんポスト」で男児が保護され、東京のゴミ集積場では女児が置き去りにされた。〈ツバメの子赤ちゃんポストは無縁です〉。川柳欄の入選作にほほえみつつ、「に」と「と」の違いを思ってみる。

   부모와 아이를 둘러싼 가혹한 이야기가 많다. 쿠마모토시의 「아기 포스트」에 남자아이가 보호되고, 도쿄의 쓰레기 집적장에는 여자아이가 버려졌다. <제비새끼 우체통은 관계없습니다>. 센류란의 입선작에 미소 지으면서, 「に」와「と」의 차이를 생각해 본다.

 

 

 

 

聞きなし(ききなし、聞き做し)とは動物の鳴き声、主に鳥のさえずりを意味のある人の言葉やフレーズにあてはめて憶えやすくしたもの。聞き做しという用語を初めて用いたのは、鳥類研究家の川口孫治郎の著書『飛騨の鳥』(1921年)と『続 飛騨の鳥』(1922年)とされている。昔話や民間に伝わる聞きなしを文献として初めて記録したのが同書である。同じ動物でも地域によって異なる聞きなしが伝承されている。

 

 

http://midopika.cool.ne.jp/  들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