棚田(たなだ)保存の活動に参加して、連休の一日、遠くに海を眺める房総半島の山あいで田植(たう)えをした。地元農家のお膳立(ぜんだ)てで、段をなす田の一枚一枚に、鏡のような水が張られている。
계단식논 보존 활동에 참가한, 연휴의 어느 날, 멀리에 바다를 조망하는 보소반도의 산골짜기에서 모내기를 했다. 그 고장 농가의 빈틈없는 준비로, 계단을 이룬 밭 하나하나에, 거울 같은 물이 채워져있다.
〈田一枚植えて立去る柳かな〉。名高い芭蕉の句からは、慣れた身ごなしで、すいすい苗(なえ)を植える姿が浮かぶ。だが日ごろ農作業と縁遠い弱卒(じゃくそつ)は、そうはいかない。腰が定(さだ)まらず右往左往(うおうさおう )し、田(た)の中は足跡(あしあと)だらけに。植え付けにも難渋(なんじゅう)し、進まないことおびただしい。
<밭 한 뙈기 심고 떠나가는 버드나무인가>. 고명한 바쇼의 구절로부터는, 익숙한 몸놀림으로, 쓱쓱 모를 심는 모습이 떠오른다. 그러나 평소 농작업과 인연이 먼 약졸은, 그렇게 되지 않는다. 허리가 안정되지 않아 우왕좌왕하고, 논 안은 발자국 투성이로. 모내기도 난삽하고, 도무지 나아가지를 못한다.
古く、田植(たう)えは女性の仕事とされ、従事(じゅうじ)する人を早乙女(さおとめ)と呼んだ。力のいる田打ちや代掻(しろか)きが男の仕事だった。〈生きかはり死にかはりして打つ田かな 鬼城〉。土に生かされ、土を頼みに命をつなぐ。往時(おうじ)の労働(ろうどう)の厳しさを思うと、粛然(しゅくぜん)とさせられる。
예로부터, 모내기는 여성의 일로 여겨져, 종사하는 사람을 사오토메(모내기하는 처녀/처녀)라고 불렀다. 힘이 필요한 봄갈이나 써레질이 남자의 일이었다. <사는 대신 죽는 대신해서 일구는 논인가 키죠우>. 땅에 되살려져, 땅을 의지하여 목숨을 부지한다. 지난날 노동의 힘겨움을 생각하니, 숙연해진다.
〈粒粒皆辛苦(りふりふかいしんく)すなはち一つぶの一つぶの米のなかのかなしさ〉と詠んだのは山形県出身の斎藤茂吉(さいとうもきち)である。戦前は、小作制度(こさくせいど )や飢饉(ききん)が農家を痛めつけた。収穫(しゅうかく)しても自分たちの食べる分はない。白い米粒(こめつぶ)が農民の「辛苦とかなしさ」を象徴した時代は長く続いた。
<립립개신고(알알이 모두가 괴로움) 즉 한 톨 한 톨의 쌀에 담긴 슬픔> 라고 읊은 것은 야마가타 현 출신의 사이토 모키치이다. 전쟁 전은, 소작제도나 기근이 농가를 닦달했다. 수확해도 자신들이 먹을 몫은 없다. 하얀 쌀알이 농민의 「고생과 슬픔」을 상징했던 시대는 길게 이어졌다.
戦時中(せんじちゅう)は妙な米の炊(た)き方があった。一昼夜(ちゅうや)水に漬け、膨張(ぼうちょう)しきったところで火にかける。食糧不足(しょくりょうぶそく)を補(おぎな)うために政府が広めた。名付けて「国策炊き」。量は増えても、しょせん水膨れだから、腹はすぐに減ったそうだ。
전시중은 별난 밥 짓는 방법이 있었다. 하루밤낮 물에 담가, 팽창되었을 쯤에 불을 붙인다. 식량부족을 보충하기위해 정부가 보급시켰다. 이름하여 「국책 밥 짓기」. 양은 늘어도, 어차피 물에 불렸기 때문에, 배는 금방 꺼졌다고 한다.
さまざまな時を経て、幸か不幸か、素人(しろうと)の米(こめづく)作りが歓迎される時代である。労働の厳しさにも、一粒のかなしさにもほど遠いけれど、参加者の数だけ、米に関心を持つ人は増えたことだろう。
이런저런 시기를 지나, 행인지 불행인지, 초보자의 쌀 경작이 환영받는 시대이다. 노동의 힘겨움에도, 한 톨의 슬픔에도 거리는 멀지만, 참가자의 수만큼, 쌀에 관심을 가진 사람은 늘어난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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