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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성인어

天声人語 2007年06月28日(木曜日)付

 

 しばらく前のことだが、NHKの「みんなのうた」で『ねっこ君』という愉快な曲が流れていた。地中(ちちゅう)で踏ん張って大木(たいぼく)を支える根っこの歌だ。切ってしまえば、桃栗(ももくり)3年柿(かき)8年、木がまた育つには長い時間がかかります――。掛け合いの歌声を面白く聞いた。

   얼마 전의 일인데, NHK의 「모두의 노래」에서 『뿌리군』이라는 유쾌한 곡이 흐르고 있었다. 땅속에서 힘껏 버텨 큰 나무를 떠받치는 뿌리에 대한 노래이다. 잘라버리면, 복숭아나무와 밤나무는 3년, 감나무는 8년(이 지나야 열매를 맺는다), 나무가 다시 자라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 번갈아 가며 부르는 노랫소리를 재미있게 들었다.

 

 

 

 思い出したのは、仙台のケヤキ並木(なみき)の「処遇(しょぐう)」について先日書いたら、多くの便(たよ)りをいただいたからだ。「切らずに残して」がほとんどだった。人が樹木(じゅもく)に寄せる愛着のほどを、あらためて思った。

   생각을 떠올린 것은, 센다이의 느티나무 가로수의 「처우」에 대하여 며칠 전에 썼더니, 많은 편지를 받았기 때문이다. 「자르지 말고 남겨둬요」가 대부분이었다. 사람이 수목에 기울이는 애착의 정도를, 새삼 느꼈다.

 

 

 

 その割には、ほうぼうで簡単に切られることが多い。開発ばかりではない。近ごろは、薄暗(うすぐら)い、目が届かないといった防犯(ぼうはん)上の理由で、公園や校庭の木が切られている。

   그에 비해, 여기저기에서 간단히 잘리는 경우가 많다. 개발만은 아니다. 최근에는, 어두침침하다, 눈이 닿지 않는다는 방범상의 이유로, 공원이나 교정의 나무가 잘리고 있다.

 

 

 

   『私たちは本当に自然が好きか』。問いかけをそのまま題名(だいめい)にした本を、塚本正司さんが著(あらわ)した(鹿島出版会)。住宅地(じゅうたくち)の計画に長く携(たずさ)わった人で、冷遇(れいぐう)される木々に心を痛めてきた。新緑、万緑と愛(め)でられる。その一方で、落ち葉が邪魔、虫が多い、など人の都合で厄介者(やっかいもの)にされてきたからだ。

   『우리들은 정말 자연을 좋아하는가』. 질문을 그대로 제목으로 한 책을, 츠카모토 쇼우지씨가 펴냈다(카고시마 출판사). 주택지 계획에 오랫동안 종사해왔던 사람으로, 냉대 받는 나무들에 마음 아파해왔다. 신록, 만록이라 사랑받는다. 그런 한편에서는, 낙엽이 방해, 벌레가 많다, 등 사람의 편의 때문에 애물단지로 여겨져 왔기 때문이다.

 

 

 

 桜に生涯(しょうがい)をささげ、岐阜の荘川(しょうかわ)桜の移植を手がけた故・笹部新太郎も、樹木の生命を軽(かろ)んじる人間の身勝手を憤(いきどお)った。植物は動物と違い、死ぬのと殺されることに区別を付けにくい。「木を殺す意味の漢字を一字だけ作ってほしい」と、たぎるような言葉を残している。塚本さんの思いにも通じるものがあろう。

   벚꽃에 평생을 바치고, 기후현의 쇼우가와 벚나무의 이식을 직접 했던 고 사사베 신타로도, 수목의 생명을 가벼이 여기는 인간의 제멋대로에 분개했다. 식물은 동물과 달리, 죽는 것과 죽임을 당하는 것에 구별을 짓기 힘들다. 「나무를 죽인다는 의미의 한자를 한 글자만 만들어주면 좋겠다」라며, 북받쳐 오르는 듯 한 말을 남기고 있다. 츠카모토씨의 생각과도 통하는 면이있으리라.

 

 

 

 『ねっこ君』の歌には、近ごろ森が少なくなったと嘆(なげ)くモグラが登場する。一本の木に育(はぐく)まれる生命の多彩さにも思いをめぐらせたい。

   『뿌리군』이라는 노래에는, 요즘 숲이 적어졌다며 슬퍼하는 두더지가 등장한다. 한 그루의 나무에 보호받으며 자라나는 생명의 다채로움에도 생각을 기울여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