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성인어

天声人語 2007年05月10日(木曜日)付

ahoi-i- 2007. 5. 12. 02:16

 

  歌われなかったことで、永遠の生命を与えられた歌がある。1945年春、沖縄師範(しはん)学校女子部と沖縄県立第一高女の卒業式のために準備された「別れの曲(うた)」だ。

  불리어지지 않았기에, 영원한 생명을 부여받은 노래가 있다. 1945년 봄, 오키나와 사범학교 여자부와 오키나와 현립 제일 고등 여학교의 졸업식을 위해 준비되었던 「이별의 노래」이다.

 

 

〈業なりて巣立つよろこび/いや深きなげきぞこもる/いざさらばいとしの友よ/何時(いつ)の日か再び逢(あ)わん〉。式直前、3割の生徒が看護要員として前線に送られる。夜の兵舎(へいしゃ)での卒業式では、練習を重ねたこの曲ではなく、出征兵士(しゅっせいへいし)を送る「海ゆかば」が斉唱(せいしょう)された。3日後、米兵18万人の本島上陸が始まる。

  <졸업을 맞이하여/사회로 나가는 기쁨/아니 깊은 비탄마저 어린다/이제 안녕 사랑하는 친구여/언젠가 다시 만나자>. 졸업식 직전, 3할의 생도가 간호요원으로서 전선에 보내진다. 밤의 병영에서의 졸업식에서는, 연습을 거듭했던 이 노래 아닌, 출정병사를 전송하는 「우미유카바(바다로 나가면 - 일본군국주의의 상징적인 노래?)」가 제창되었다. 3일후, 미국병사 18만 명의 본섬상륙이 시작된다.

 

 

 戦場動員(せんじょうどういん)された「ひめゆり学徒」222人は15~19歳だった。戦闘や捕虜(ほりょ)を拒(こば)んだ自決(じけつ)により123人が死亡した。生存者(せいぞんしゃ)の証言を収(おさ)めた映画「ひめゆり」が、近く東京で公開される。

  전쟁터에 동원된 「히메유리 학도」222인은 15~19세였다. 전투나 체포를 거부한 자결에 의해 123인이 사망했다. 생존자의 증언을 담은 영화 「히메유리」가, 일간 도쿄에서 공개된다.

 

 

 柴田昌平監督は13年をかけて、22人の肉声を集めた。亜熱帯(あねったい)のまぶしい景色の中で、時に淡々と、時に絞(しぼ)り出すように、すさまじい体験談が延々(えんえん)と続く。試写室の闇に、重いため息がこぼれた。

  시바타 쇼헤이감독은 13년을 들여서, 22인의 육성을 모았다. 아열대의 눈부신 풍경 속에서, 때로는 담담하게, 때로는 쥐어짜듯, 섬뜩한 체험담이 계속 이어진다. 시사실의 어둠에서, 무거운 한숨이 새어 나왔다.

 

 

 ひめゆり平和祈念資料館に並ぶ遺影(いえい)に向かい、新崎昌子(あらさき・まさこ)さん。「ここに来ると、同級生は今も16歳の顔でほほ笑(え)んでいます。孫と同じ年です。私があの世に行く時は、友達が味わえなかった平和な時代のお話を、いっぱいお土産にしたい」

  히메유리 평화기념자료관에 늘어선 유영을 마주 대한, 아라사키 마사코씨. 「여기에 오면, 동급생은 지금도 16세의 얼굴로 미소 짓고 있습니다. 손자와 같은 나이입니다. 내가 저 세상에 갈 때는, 친구가 맛볼 수 없었던 평화로운 시대의 이야기를, 가득 선물하고 싶어요」

 

 

 「別れの曲」は毎年の慰霊祭(いれいさい)で歌い継がれているが、証言者のうち3人が映画を待たずに亡くなった。忘れたくて、一度は砕(くだ)き捨てた記憶かと思う。その破片をカメラの前でつなぎ合わせてくれた元ひめゆりたち。かけがえのない「記憶の束」を両手で抱え、次世代に運び届けたい。

  「이별의 노래」는 매년 위령제에서 계속 불리어지고 있지만 , 증언자 가운데 3인이 영화를 기다리지 못하고 사망했다. 잊고 싶어서, 한번은 부숴버렸던 기억인가 싶다. 그 파편을 카메라 앞에서 이어 맞춰준 옛 히메유리들.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기억의 다발」을 두 손으로 감싸 안아, 다음 세대에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