天声人語 2007年06月30日(土曜日)付
亡くなった宮沢喜一(みやざわ きいち)さんが、日米学生会議の一員として初めて渡米(とべい)したのは昭和14年だった。日中戦争のさなか、日米の空気は険悪(けんあく)の一途(いっと)である。往路(おうろ)の船中、日本の立場を弁護(べんご)しようと、仲間と盛んに意思統一(いしとういつ)をはかった。
작고한 미야자와 키이치씨가, 일미학생회의의 일원으로서 처음 도미했던 것은 소화 14년이었다. 중일전쟁이 한창인 때, 일미의 분위기는 험악함만이 있을 뿐이었다. 가는 길의 배 안, 일본의 입장을 변호하고자, 동료와 맹렬히 의사통일을 도모했다.
会議に臨むと、向こうの学生は思い思いに意見を述べた。日本を悪く言う者もいるが、自国を批判する者も随分(ずいぶん)いる。「言論の自由というのはこれか」。知米派で聞こえた元首相の、原風景(げんふうけい)になった。
회의에 임하자, 상대편의 학생은 각자 나름대로의 의견을 말했다. 일본을 나쁘게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자국을 비판하는 사람도 상당히 있다. 「언론의 자유라는 것은 이것인가」. 지미파로 알려진 전 수상의, 원풍경(原風景)이 되었다.
そうした体験をへて身についた「冷静な合理主義(ごうりしゅぎ)」が、政治家としての持ち味になり、弱みにもなる。期待株と目(もく)されながら、初入閣から首相就任(しゅしょうしゅうにん)までに29年かかった。田中角栄氏ら親分肌(おやぶんはだ)のボスに疎(うと)まれたためである。「泥田(どろた)をはいずり回れない」といった陰口(かげぐち)もついてまわった。
그러한 체험을 겪으며 몸에 밴 「냉정한 합리주의」가, 정치가로서의 개성이 되고, 약점도 된다. 기대주로서 촉망받았지만, 첫 입각에서 수상 취임까지는 29년 걸렸다. 다나카 카쿠에이씨등 두목 기질의 보스에게 소외당했기 때문이다. 「진흙 밭에 기어 돌아다니지 않는다 (고고한 척 한다?)」는 험담도 따라다녔다.
首相時代、指導力に疑問符(ぎもんふ)がついたこともある。だがハト派の象徴としての存在感は、最後まで揺(ゆれ)るがなかった。自衛隊のイラク派遣に反対し、憲法9条の改正には慎重であり続けた。
수상 시절, 지도력에 물음표가 붙었던 적도 있다. 그러나 비둘기파(온건파)의 상징으로서의 존재감은, 최후까지 흔들림이 없었다. 자위대의 이라크 파병에 반대하며, 헌법 9조의 개정에는 신중함을 유지했다.
〈どの論理も〈戦後〉を生きて肉厚き故しずかなる党をあなどる 岡井隆(おかい たかし)〉。ふと胸をよぎるのは、この歌だ。宮沢さんのような「しずかなる民主主義者」をあなどる、粗(あら)っぽい空気が、いまの政界を覆(おお)ってはいないだろうか。
<어떤 논리든 <전후>를 살아오며 호강에 겨워지니 조용한 당을 경시한다. 오카이 타카시>. 문득 가슴을 스치는 것은, 이 단가이다. 미야자와씨와 같은 「조용한 민주주의자」를 경시하는, 거친 분위기가, 현재 정치계를 뒤덮고 있지는 않은가.
「総理大臣が刀を抜いて、『進め、進め!』なんていうのは戦国(せんごく)ドラマの見過ぎ」と、宮沢さんは言っていた。民主主義は、ときに遅々(ちち)としてじれったいものだ。初入閣から1年で首相の座に就いた現職には、その辺の理解がないのかもしれない。
「총리대신이 칼을 빼어들고, 『전진하라, 전진하라!』라는 둥 말하는 것은 전쟁드라마를 너무 많이 봐서」라고, 미야자와씨는 말했었다. 민주주의는, 때로 느리고 더뎌서 애타는 것이다. 첫 입각으로부터 1년 만에 수상의 자리에 오른 아베에게는, 그 정도의 이해가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