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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魂)과 백(魄)

ahoi-i- 2010. 4. 8. 22:34

자궁 안에 씨앗이 머물면 우주의 어딘가에서 영적 존재가 그 씨앗으로 들어와서 생명을 준다, 그러면 새로운 생명으로 이 세상에 태어나는 것이다.

반대로 죽음이란 우리의 육신에서 영(靈)이 분리 되어 자기의 원향(原鄕)으로 되돌아가는 것을 말한다. 태어남과 죽음을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전 세계에서 거의 공통적인 관념이기도 하다. 그러나 영과의 결합과 분리하는 과정은 약간의 차이가 있다.

중국인의 사유세계를 조금 더 들여다보면, 중국인들은 영을 다시 魂과 魄으로 나누어서 생각한다. 사람이 태어나면 먼저 백이 활동을 시작하여 양기(陽氣)를 모우고, 이 양기가 활동하는 것을 혼이라고 하였다.
혼은 살아있는 동안에도 가끔 육체를 떠나서 자유자재로 떠돌아 다니기도 하는데(魂飛魄散), 이러한 현상은 잠자는 동안에는 꿈에서 일어나기도 한다. 그러나 육신과 혼의 분리(탈혼상태)가 오래 지속되면 정말로 죽어버리게 된다.

사람이 죽고 나면 혼과 백은 사람의 육신을 떠나서 자기의 고향(原鄕)으로 되돌아 가버린다. 이를 회향(回鄕)이라고 한다. 혼은 즉시 떠나가버리는 대신에 백은 시신에 좀 더 오래 머물러 있다.

육신을 떠난 혼은 상제(上帝)의 나라인 하늘로 올라가서 생전의 자신의 신분을 유지하면서 일상의 삶을 누린다. 지위가 높은 자는 상제의 측근 신하가 되고, 낮은 자는 그곳에서도 낮은 신분으로 살아간다. 그래서 왕이나 제후쯤 되면 신적 존재로 생활하게 된다고 한다.

그러나, 혼이 하늘나라에 이르기까지에는 길은 복잡하고, 도처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지상에서는 土伯이라는 것이 혼을 잡아먹으려 달려들고, 하늘에 오르면 천양이 역시 잡아먹으려 한다. 하늘에 이르는 아홉 단계의 문을 통과 할 때마다 문지기들에게 필요한 시험을 거쳐야 한다.

혼은 혼자서 이 험한 길을 헤쳐 나가기가 너무 힘이 들므로 길잡이를 필요로 한다. 축(祝文)이 길잡이 역할을 한다. 따라서 장례식 때 축문을 읽는 사람이 길잡이 역할을 하는 셈이다. 지역에 따라서는 하늘로 자주 오르내리는(영적 세계로 여행을 할 수 있는) 무당(巫)가 죽은 자의 영혼을 뒤쫓아 가서 안내하기도 한다. (나중에 유교 사회가 되면 축은 받아들이고, 무는 음사라면서 배척한다.)

백(魄)은 금방 육신을 떠나지 않고 무덤 속에서 시신과 함께 머물면서 후손들이 올리는 제사의 제물을 받아먹고 있다고 한다. 후손들이 제사를 중단하면 제물을 먹지 못해 굶주리게 된다. 굶주림을 도저히 참을 수 없을 지경에 이르면 백은 이승으로 되돌아 와서 귀(鬼)가 된다고 하였다.
후손들이 제사를 올리지 않으면 꿈에 나타나서 호소하기도 한다고 한다. 배가 고파서 떠도는 귀신은 종종 심술을 부려서 인간을 해꼬지 하기도 한다. 이때의 귀를 여(厲)라고 하여 주로 질병을 일으킨다고 하였다. (주로 자기를 홀대하는 사람에게···· 굿을 하면 조상신이 서럽다고 자주 나타난다.)

기원 전 543년에는 정(鄭)나라 백유가 길거리에서 살해되었다. 아무도 돌보지 않자 그 거리에 종종 나타나서 사람들을 혼비백산하게 하였다. 몇 년 뒤에 그의 아들이 복위를 하여 원수도 갚고, 제사도 지내자 거리에 나타나는 일이 없어졌다고 하였다.

魄은 오래 살지는 못한다고 하였다. 생존기간을 약 3년으로 보고 있다. 이 기간은 시신에서 살이 썩어지는 시간과 비슷하다. 그래서 옛날 사람들은 거상 기간을 3년으로 하였다.(그러나 실제로는 그보다 짧다. 부모의 경우는 주로 28개월을 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새로 만든 무덤에 가면 섬찍하고 두려운 생각이 들지만 오래 된 무덤에는 무섭지가 않다. 오히려 시골의 잔디가 잘 깔린 무덤에서는 밤중에 데이트까지 하지 않는가.
그러나 생전에 막강한 힘을 가졌던 인물은 혼과 백이 1000년도 더 오래 동안 산다고 하였다. 그들은 신적 존재가 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불천위로 제사를 모시는 분들도 그런 이유에서 이다.

예로부터 흔히 혼이 사는 곳은 천상의 왕국이고, 백이 사는 곳은 지하 왕국(명부)이라고 생각하였다. 천국은 상제가 다스리고, 지하왕국은 귀왕이 다스린다고 하였다. 또 지하 세계를 황천(黃泉) 또는 구천(九泉)이라고도 불렀다.

혼이나 백이 살아가는 방법은 생존해 있을 때의 생활과 비슷하다고 하였다. 따라서 왕이나 제후가 죽으면 저 세상에서도 시중을 들어 줄 사람이 필요하였다. 그래서 순장이라는 방법으로 현세에서 자기의 주변에 있던 사람들을 데리고 갔다.
기원전 678년에 진나라의 무공은 장례를 치를 때 66명을 순장했다. 손자뻘인 목공은 166명을 순장하여 데리고 갔다.

그러나 후대로 오면서 밀짚 인형이나 나무 인형, 토용으로 바꾸었다. 진시황릉 부근의 병마용도 산 사람 대신에 토용(흙로 구워 만든 인형)을 대용하였던 것이다.

우리나라의 상여에 각시를 위시한 목각 인형들이 달려 있다. 이것도 장식용이 아니고 예전에 순장을 하였던 관습이 흔적으로 남아있는 것이라고 하였다.





출처 : http://www.essay-yn.or.kr/bbs/view.php?id=board7&no=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