天声人語 2007年04月22日(日曜日)付
美しいものより美しいのは、美しいものが荒廃(こうはい)した姿である――オーギュスト・ロダン。彫刻家(ちょうこくか)ロダンの作品が、がぜん官能(かんのう)の色を帯(お)びる一時期がある。弟子(でし)で愛人のカミーユと暮らした1880年代だ。
아름다운 것보다 아름다운 것은, 아름다운 것이 황폐해진 모습이다--오귀스트 로댕. 조각가 로댕의 작품이, 돌연 관능의 빛을 띤 한 시기가 있다. 제자이자 애인인 까미유와 살았던 1880년대이다.
18歳で42歳のロダンと出会い、やがて身を引くカミーユ。女として芸術家として独り立ちに挑(いど)むも、世界に飛躍(ひやく)していくロダンへの愛憎(あいぞう)、孤独(こどく)、貧苦(ひんく)の果(は)てに心を病(や)む。78歳で没(ぼつ)するまでの30年は、南仏の精神科病院にいた。
18세에 42세의 로댕과 만나, 결국엔 물러선 까미유. 여자로서 예술가로서 홀로서기에 도전함도, 세계로 비약해간 로댕에의 애증, 고독, 빈곤의 끝에 마음이 병든다. 78세로 사망하기까지의 30년은, 남프랑스의 정신과 병원에 있었다.
その激しく悲しい、さまよえる魂が、浅春(せんしゅん)のパリに「着物姿」で帰ってきた。京都の日本舞踊家、西川千麗(にしかわ せんれい)(せんれい)さんがこのほど披露した創作舞(そうさくぶ)「カミーユ・クローデル」(04年作)だ。
그 너무나도 슬픈, 헤매던 영혼이, 초봄의 파리에 「키모노차림」으로 돌아왔다. 교토의 일본무용가, 니시카와 센레이씨가 이번에 공개한 창작무「까미유 끌로델」(04년작)이다.
フランス人の生き様を、バレエやオペラではなく日舞に転写(てんしゃ)するには、言葉や顔立ちに頼らぬ表現力がいる。黒装束(くろしょうぞく)の千麗さんは、栗色(くりいろ)の髪を垂(た)らし、金の扇2枚で文化の壁に向かった。舞(まい)の頂点(ちょうてん)で、ぽとり、ぽとりと扇が落ちる。恋心、ロダンとの子、創作熱、正気。カミーユが喪失したあれやこれやを、散る扇に込めた。
프랑스인의 사는 모습을, 발레나 오페라가 아닌 일본무용으로 옮기는 데에는, 언어나 얼굴 생김새에 의지하지 않는 표현력이 있다. 검은 복장의 센레이씨는, 밤색의 머리를 늘어뜨리고, 금부채 2개로 문화의 벽과 마주했다. 무용의 절정에서, 뚝, 뚝하고 부채가 떨어진다. 변심, 로댕과의 아이, 창작열, 정기. 까미유가 상실한 이것저것을, 떨어진 부채에 담았다.
20年ほど前にカミーユを知り、いつかは舞うと心に決めた舞踊家は「自分を空(から)っぽにし、心に住みついた彼女に身を任せた」という。舞台に見入ったカミーユの縁者(えんじゃ)たちは「この美しさなら本人も幸せ」と喜んだ。
20년 정도 전에 까미유를 알고, 언젠가는 춤추리라 마음을 정했던 무용가는 「자신을 텅 비우고, 마음에 자리 잡은 그녀에게 몸을 맡겼다」고 한다. 무대를 지켜본 까미유의 가족들은 「이런 아름다움이라면 본인도 행복」이라고 기뻐했다.
実弟(じってい)で、大正から昭和に駐日大使を務めたポール・クローデルは書いている。「禅宗(ぜんしゅう)によれば、偉大なる真理は言葉ではなく、ある種の伝染(でんせん)により心に届く」。日舞に織り上げた「荒廃の美」もまた、時空を超えて伝わった。
친동생으로, 타이쇼에서 쇼와에 걸쳐 주일대사를 역임했던 폴 클로델은 쓰고 있다. 「선종에 의하면, 위대한 진리는 말이 아닌, 어떤 종류의 전염에 의해 마음에 이른다」. 일본무용으로 엮어 올려진 「황폐의 미」도 역시, 시공을 초월해서 전해진다.